2008년 12월 27일 토요일

Clayton Christensen 교수 방한 2007.03

 




‘경영학의 아인슈타인’ 역발상 경영을 외치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고객만족 경영? 벤치마킹?…모범적 경영이 되레 실패 불러”

정동일 한국왓슨와이어트 리더십센터 소장 / 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
입력 : 2007.03.23 10:28 / 수정 : 2007.03.29 16:00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혁신에 절박하지만 시장에는 왜 실패한 기업들이 즐비한가? 성공의 체험을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이 왜 참담한 실패를 맛보는가? 질주하는 중국경제는 한국을 비롯한 선발국의 경제를 무참히 뒤엎을 파괴적인 힘인가?

혁신 기술로 무장한 작은 기업들이 거대 기업을 무너뜨리는 역전의 시대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전투는 신기술 글로벌 경제에서는 일상의 일이 되고 있다. 시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에 불과했던 신기술의 소기업이 전통의 거대 기업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경제경영학이 안개 속을 더듬으며 답을 찾고 있는 이때, 신기술이 몰고 온 패러독스를 해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세계는 이 역(逆)발상의 경영학에 주목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55) 교수. 그는 “고객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말라. 고객을 위해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헛수고일 수도 있다”고 외친다. 고객만족경영이 바이블처럼 떠받들어지는 현실에 고객을 무시하라는 그의 이론은 파괴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인도, 기존 이론에서 답을 못 찾고 새로운 해법에 목마른 학자들도 그의 이름에 주목하고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이 상대성 이론에 자리를 내주었듯, 세계는 패러다임을 바꾼 그의 이름을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부르고 있다.

■ “모범적인 경영은 성공을 방해한다”

그의 이론은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왜 성공한 기업들의 모범적인 행보가 때로는 급작스러운 실패에 부딪히는 걸까?’

그는 소위 ‘모범적인 경영’이 성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톰 피터스 등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컨설턴트들이 등장하면서 컨설팅 업계는 ‘성공한 기업 따라하기’류의 벤치마킹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최고로부터 배우기’나 ‘성공의 비밀’, ‘성공의 습관’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최고로 여겨졌던 성공스토리의 비결은 특정 시간이나 상황에서만 맞아 떨어지고 범용성이 낮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기업들의 모범 경영 사례를 공부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없다. 기업들의 성공 요인은 당시 상황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며,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뒤집어 질 수 있다.

그가 강조하는 ‘좋은 경영’은 성공적인 몇몇 기업의 특성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벤치마킹은 사람이 새의 깃털을 달고 날아 오르기 원하는 것처럼 어리석다는 것이다. 좋은 경영은 성공의 뒤에 자리잡고 있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고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새의 날갯짓만을 볼 게 아니라 공중에 뜨도록 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파악하는 사람만이 비행에 성공할 수 있다.

■ “대기업들은 저가 시장 사수해야”

다윗의 전성시대에 골리앗 대기업들의 생존방식은? 크리스텐슨 교수는 신생 기업들에게 저가 시장을 내주지 않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신생 기업들은 저가 시장부터 파고드는 ‘파괴적(disruptive) 혁신’을 통해 성장한다. 예를 들자. 어느 날 어린 소년이 시장에 등장한다. 소년이 만약 거인이 관리하는 ‘최우수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려고 한다면, 거인은 소년을 짓밟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이 저가 시장에서부터 제품을 팔기 시작한다면? 거인은 기꺼이 이 시장을 내놓을 것이다. “어차피 수익도 나지 않을 시장 그냥 줘버리지 뭐…”라는 생각으로. 저가 시장에서 시작한 소년은 거인이 모르는 사이에 수익이 높은 고가 시장을 향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한다. 거인이 소년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게 될 즈음, 이미 때는 늦었다. 소년은 이미 거인보다 더 커졌다.

■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석학

인텔, 휴렛 팩커드, 코닥, 루슨트 테크놀로지 등의 CEO들은 앞다퉈 크리스텐슨 교수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 스케줄을 빼곡히 메운 순회 강연과 매일 쏟아지는 수백 통의 이메일로 올해 그의 시간은 거의 예약이 끝났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업체 한국왓슨와이어트와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기업 경영진 대상 제1회 ‘글로벌 리더십 포럼’ 강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 2m 거구의 석학은 인터뷰 도중 1971년부터 2년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배운 한국어 실력을 간간이 보여줬다. 당시 19살 청년 선교사는 어느 새 쉰을 훌쩍 넘긴 세계적 석학이 돼 한국 경제에 애정 어린 충고를 보냈다. ‘파괴적인 혁신’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과 대한민국호(號)를 향해 그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경영학계의 '아인슈타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인터뷰 틈틈이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그는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 업체인 한국왓슨와이어트 리더십센터가 개최하는 제1회 경영진대상 '글로벌 리더십 포럼'에서 강연자로 나서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 밀크셰이크 경쟁 상대는 바나나와 월스트리트저널지(紙)

―기업들은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시장은 패배자로 즐비합니다. 혁신적(innovative)이라고 불리는 대기업들조차 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뭘까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흔히 시장을 제품·소비자로 나눠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기업은 시장을 소형·중형·SUV·미니밴 등으로 나눠 각 시장의 크기과 점유율을 설명해요. 또 18~34세 여성·가난한 사람·부유한 사람 등으로 소비자를 세분하죠.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본 것일 뿐입니다.”

―고객의 시각이 아니라는 얘기군요.

“고객이 돼 제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각각의 상품이 소비자가 처리해야 할 일(job)들을 해결해 준다는 사실이 보일 겁니다. 제품을 팔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원하는 그 무엇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시장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보일 겁니다.”

―예를 들어 주신다면?

“맥도널드의 밀크셰이크 얘기를 해드릴게요. 맥도널드는 밀크셰이크를 디저트 상품군으로 분류해 매출 증대를 시도했습니다. 따라서 경쟁관계에 있는 제품을 KFC의 비스킷, 버거킹의 아이스크림 등으로 잡았죠. 또 밀크셰이크를 소비하는 고객 군을 분석해 8~13세의 어린아이들이 즐겨 먹는 메뉴로 분류했습니다. 또 인구 통계학적으로 이들의 심리도 분석했죠. 면밀한 분석 후 맥도널드는 밀크셰이크의 품질을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왜 실패했죠?

“바로 사람들이 밀크셰이크를 구매하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즉,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이 어떠한 용도로 쓰이는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죠. 어느 날 동료 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매우 이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밀크셰이크가 하는 일(job)이 뭘까?’.”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밀크셰이크가 하는 일이라….

“해답을 얻기 위해 제 동료는 곧 바로 밀크셰이크를 파는 가게에 달려갔죠. 10시간 동안 그 곳에 죽치고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입고, 언제 누구와 함께 밀크셰이크를 사러 오는지가 주된 분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어떠한 현상이었나요?

“밀크셰이크를 사러 오는 손님들 중 50%는 혼자, 그것도 아침 시간에 가게를 찾았습니다. 또 손님들 중 대부분이 승용차를 타고 가게로 와 밀크셰이크만 단품(單品)으로 구입했죠. 그리고 바로 차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어요. 다음날 아침, 그는 고객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밀크셰이크가 어떤 역할을 하기에 이런 이른 아침시간에 사 들고 가는 건가요?’.”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했나요?

“그들은 아침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밀크셰이크를 구입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사람들은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싶어했습니다. ‘10시쯤 되면 배가 고플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무언가 먹어야 한다는 욕구도 있었죠.”

―하지만 먹을 것이야 다른 것도 많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전에 바나나를 사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나는 다 먹는 데 3분밖에 안 걸렸죠. 그리고 조금 뒤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도너츠 역시 사봤는데 손과 운전대에 음식 부스러기가 묻을 뿐 아니라 1시간 뒤 허기가 졌습니다. 하지만 밀크셰이크는? 출근 후 오전 10시까지 배를 든든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만약 버스를 이용해 출근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밀크셰이크를 산다면 월스트리트저널지(紙)가 경쟁품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이유로 밀크셰이크를 사왔던 것이죠.”

―그렇다면 맥도널드의 전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밀크셰이크를 사는 소비자들은 줄을 서는 과정이 귀찮아 때로는 맥도널드를 그냥 지나친다고 답했습니다. ‘드라이브 인(drive-in)’ 등의 시스템을 통해 간편히, 짧은 시간 내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밀크셰이크의 판매장소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합니다. 맥도널드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주유소 등 출근길에 들를 가능성이 높은 곳에 밀크셰이크 자판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또 먹는 데 시간이 최대한 많이 걸리도록 걸쭉하게 만들어야 하겠죠. 입이 심심할 수 있기 때문에 과일을 넣을 수도 있을 겁니다.”

―보통 소비자들의 건강이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과일을 넣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쯤 되면 소비자들이 사실 밀크셰이크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과일을 넣는 것은 전적으로 씹히는 맛으로 지루함을 달랠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이 사례가 기업들에 던지는 교훈은 뭘까요?

“기업들은 시장을 제품군으로 구별하기 때문에 경쟁사들의 제품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장은 생각하기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됩니다. 이제는 시장의 잠재력을 봐야 해요. 아직까지 소비자 군이 형성되지 않은 분야까지 경쟁의 카테고리 안에 넣어야 할 겁니다.”

신생기업, 低價시장부터 파고드는 파괴적 혁신 통해 성장

■ 기술혁신보다 사업모델 혁신이 중요

―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결국 기존의 제품에 사용되는 기술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군요?

“ ‘파괴적인 혁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결국 고객들이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죠.”

―그래도 남보다 앞서가는 기술혁신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술혁신보다 사업모델의 혁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1970년대 ‘미니컴퓨터’라는 게 등장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비슷하게 매우 컸고 가격도 비싸 25만달러에 판매 됐습니다. 보스턴의 DEC라는 회사가 70~80년대 당시 활동하던 기업 중 가장 명망이 높았습니다. 당시 미니컴퓨터에 맞는 경영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얼마 후 DEC는 경영상의 문제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어떻게 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당시 세계 컴퓨터업계의 트렌드는 이미 미니컴퓨터 시장에서 PC(퍼스널 컴퓨터)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DEC는 당시 PC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PC는 심지어 델(Dell)이라는 대학생이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었죠.”

―하지만 DEC가 PC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당시 PC 시장보다 미니컴퓨터를 생산하는 게 훨씬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DEC의 입장에서 PC 시장은 진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익성이 낮은 시장이었습니다. 또 사업모델 자체도 PC 시장과 맞지 않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사업모델이 어떻게 달랐나요?

“DEC가 보유한 기술 자체는 상당히 고급기술이었습니다. 수 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4년을 투자해 탄생하는 기술이었죠. DEC의 미니컴퓨터는 시스템이 복잡해 직접 판매·설치 해야 했습니다. 수익률이 45%가 돼야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고비용 구조였습니다. 반면 PC 시장은 25% 수익률만을 내는 시장이었습니다. 결국 DEC는 이익이 적은 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려 했고, 이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같은 시기, IBM은 PC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어요. 이들은 25%의 마진으로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영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즉, 기술의 혁신이 아니라 경영상의 혁신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죠.”

소비자 문제 근본 해결 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인재 필요

■ 아이디어 있는 인재가 필요해

―그렇다면 혁신적인 기업의 인재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아이디어!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디어입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란 제품에 관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말하는 겁니다. 이를 흔히 ‘통찰력’이라고 하죠.”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시죠.

“어느 날 한 사람이 자신이 개발한 카드게임을 들고 나에게 찾아왔어요. 그는 매우 들떠 있었지만, 나는 그 카드게임에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어요. 한마디로 ‘별로’였어요. 나는 그에게 이 제품을 개발했는지,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감복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그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지친 상태에서 아이들과 놀아줘야 했다고 하더군요. 저녁식사 후부터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까지 아이들과 놀아주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이 게임을 개발했다고 설명했어요. 이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역의 부모들이 평소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 거죠. 설치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게임보다는 15분 안에 ‘결판이 나는’ 게임이 최상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게임에서 결판이 나지 않아 아이들이 자러 가지 않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경우가 없도록 말이죠. (웃음)”

―시장의 판단은 어땠나요?

“물론 그가 개발한 카드게임 자체는 처음에 신통치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 상태의 문제를 진단해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의 통찰력은 훌륭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히트치고 있는 상품 중 하나가 ‘15분 게임’ 입니다. 그의 아이디어를 소비자들이 선택하고 ‘고용(hire)’하기 시작한 거죠. 혁신적인 기업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 비(非)소비자 개척하는 신생기업 무서워

―최근 중국 시장에 기업들의 진출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여기서 조금 어려운 개념을 소개할게요. 바로 ‘비소비(non-consumption)’라는 개념입니다. 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기업은 세 가지 전략을 취할 수 있어요. 첫째는 최고의 품질로 싸움을 거는 것이죠. 즉, 고가의 제품을 만들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최고 기업의 자리를 노리는 전략입니다. 둘째는 저가시장을 공략해 고가시장의 소비자를 일부 끌어오는 겁니다.”

―마지막은?

“기존에 아예 이 제품을 소비하지 않던 사람들, 즉 비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죠. 가장 무서운 신생 기업은 이 ‘3차원의 공간’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흔히 ‘신시장 파괴’를 통해 시장에 등장합니다. 기존 기업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거죠.”

―감이 잘 오지 않는데요.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중국의 한 기업 예를 들어 볼게요. 갈란즈(Galanz)라고 하는 중국 기업이 있어요. 이 기업은 처음엔 섬유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살아 남기 위한 전환과 혁신이 필요했고 결국 다양한 생존전략 아이디어 중 ‘전자레인지 시장 진출’을 채택했습니다.”

―섬유 생산에서 전자레인지 생산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갈란즈 경영진이 이때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모두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파나소닉 등 전자제품업계의 전통적인 강자들보다 나은 품질로 승부를 걸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대기업들의 공세가 심해질 테니까요.”

―그 다음 전략은 뭐가 있을까요?

“저가의 노동력을 이용해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죠. 외국의 저가시장을 파고드는 겁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는 일상 가전용품이기 때문에 비용 우위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출에 따른 절차와 국외 시장을 분석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그렇다면 마지막인 신시장 파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네요?

“그렇습니다. 당시 중국인의 2%만이 전자레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기도 했고 생활 공간이 비좁았기 때문이죠. 갈란즈는 전자레인지를 사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98%의 중국인을 겨냥했습니다. 39달러에 매우 작고 간단한 기능의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한 거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갈란즈는 그 다음해 기능이 좀 더 개선된 제품을 출시, 점진적으로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 0%에서 40%까지. 이제 갈란즈는 동일한 전략으로 에어컨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파괴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데 있는 것일까요?

“중국엔 파괴적인 기업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요인 중 하나가 저가의 임금으로 인한 가격파괴력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혁신은 노동이 저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닙니다. 바로 중국인들의 ‘비소비’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한국 소기업 창업 어려워… 정부가 기업가 정신 북돋워줘야

■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나의 첫사랑

-한국에서 젊은 시절 2년간의 시간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1971년부터 2년간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았어요. 주위 친구들 중 아버지가 한국의 6·25 전쟁에 참전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은 목숨을 잃거나 전쟁으로 인한 상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왜 우리 아버지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분쟁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하나?’라며 한국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한국행(行)을 꺼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물론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덜컥 한국으로 보내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운명 같은 것이 있나 봅니다. (웃음)”

―그 당시 본 한국의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텐데요?

“2년 전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한국민속촌에 들렀는데 ‘이게 바로 1971년 내가 경험한 한국의 모습이야!’라고 소리쳤더니 가족들이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 (웃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변화를 일구어낸 한국인들의 저력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직까지 미국의 한인사회 구성원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거의 완벽한 한국어 발음으로)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웃음)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제가 한국에 대해 품고 있는 사랑의 크기를 꼭 알려주세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19살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나를 존중해줬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며 두 손 모아 제 손을 꼭 잡던 그 따뜻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의 모습을 늘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가족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미국에서도 반찬으로 늘 김치를 먹어요. 김치의 매운맛이 혀를 자극해 한국어 발음을 더 정확하게 해 주거든요. (웃음) 저에겐 5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죠. 첫째 아이는 독일, 둘째는 미국 남부, 셋째는 몽골에서 체류하며 선교활동을 벌였습니다. 넷째가 한국으로 선교활동을 올 계획입니다. 19살이에요. 내가 한국땅을 밟았을 때와 같은 나이죠. 넷째 아이 역시 한국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 옛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교수님 이론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보셨습니까? 교수님 인생에서 최대의 파괴적인 혁신은 무엇이었습니까?

“나의 이론을 내 인생에 적용하려니 잘 떠오르지 않네요. (웃음) 아마도 40살이라는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닐까요? 제 인생의 꿈은 언제나 교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 돈이 없어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MIT 교수들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 40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교수가 되자’. 그게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큰 파괴적 혁신이었을 겁니다.”

■ 한국 경제 미래 걱정돼

―한국은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을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일본 경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1970~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은 무서웠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성공적인 경영기법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세계적으로 일본 경제를 배우자는 움직임 또한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일본은 18년 동안 계속해서 성장이 멈췄습니다.

“맞습니다. 2000년 초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와 일본 통상성에서 일하게 된 한 학생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 경제성장 침체 탈출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죠. 그때 그 학생이 ‘일본엔 희망이 없다’라고 얘기하더군요. 당장 그를 미국으로 불러 들였어요. 당시 나는 일본 경제가 분명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틀 동안 하버드에서 진행된 토론 끝에 나 역시 ‘희망이 없다’는 그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일본의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기업들은 이미 고가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소니·캐논·도요타 등 저가시장부터 치고 올라간 일본의 대표기업들은 결국 미국 기업들을 추월했고, 오늘날 최고의 제품을 쏟아내고 있어요. 결국 일본 기업들에 추격 당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미국에선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됐습니다.”

―일본 경제의 한계와 미국의 대규모 구조조정…. 언뜻 보면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정리해고가 진행된 후 미국에선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미국 정부는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소규모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기업하기 매우 쉬운 문화를 조성한 것이죠.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탄생했고, 결국 이들은 파괴적인 혁신을 행하며 일본의 대기업들을 다시 맹렬히 추격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신데요.

“하지만 일본의 경우 소기업 창업시장이 경직돼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정리해고를 감행한 후 신생기업들이 탄생할 토양이 없습니다. 미국 신생기업들을 다시 추격할 일본 신생기업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얘기신가요?

“한때 개발도상국이었던 싱가포르·대만·한국 등은 이제 고품질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어요. 뒤를 돌아보면 중국이 바싹 그 뒤를 좇고 있죠. 하지만 나는 대만은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2개의 명함을 가지고 다닙니다. 바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앞으로 설립할 회사의 명함이죠. 그만큼 창업이 쉽고 정부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숨을 불어넣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재벌들이 시장을 좌우하고 있고 대만처럼 소규모 창업이 쉽지 않죠. 일본의 뒤를 좇지 않을 것인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한국 경제의 엔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선 기업가들이 파괴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앞장서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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